(스포일러 리뷰) 영화 컨택트 해설, 내용 살펴보기

(스포일러 리뷰) 영화 컨택트 해설, 내용 살펴보기



컨택트는 2월에 들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중 하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예매할 때 보니 빈 좌석이 거의 없다시피 대부분 시간대가 이미 꽉 차 있었다. 그러나 혼자 영화를 보러가면 반드시 한 자리 정도는 좋은 차리가 꼭 남아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은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하하(좋은건가...?)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접했던 감상평에서 '왜 한국어 제목을 컨택트-Contact 라고 고쳐 붙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들을 보았었는데, 영화를 직접 보고나니 확실히 그 의견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는 인류가 미지의 존재(외계인)와 접촉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그런 점에서 접촉이라는 의미의 Contact는 적합한 듯 보이지만, 원래의 제목인 Arrival 만큼 영화 전체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봐서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던 영화 컨택트.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가는 조심스럽게 잠시 덮어두고, 이 리뷰에서는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출처: 영화 '컨텍트')




<영화의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막상 세 가지로 나누어보려고 하니,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것을 먼저 언급해야 보다 이해하기 쉬울지 고민이 된다. 그런고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일단 시작부터 해보자면, 이 영화는 2014년에 개봉했던 또 다른 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4차원의 관점을 다루고 있다. 아니, 여기에 반발을 가질 과학 전문가분들의 질타를 피하기 위해서 다시 고쳐말하자면... 다만 인터스텔라 후반부에 등장하는 4차원의 시간이 중첩된 공간에서와 같은, '모든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는' 더 높은 차원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1. 중첩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혹은 인지하는) 외계인



컨택트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이러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즉, 이 외계인은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에 들어간 쿠퍼가 모든 시간들을 동시에 보았던 것처럼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을 동시에 인지하고 있고 이에 기반해서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외계인은 3,000년 후에 자신들에게 닥칠 위협을 알고 있었고 그 때 인류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지금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지구를 방문했다. 바로 3천년 뒤를 대비하기 위한 무기를 인류에게 주기 위해서. 


3천년 뒤라고? 일단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은 둘째로 치고, 시간을 특정한 흐름으로 인지하고 순간에 존재하는 인간이 이를 이해를 할 수 없음이 지명하다. 이런 고차원적 인지능력을 가진 외계인의 의도가 인간에게 전해지지 않는(혹은 몹시 복잡한 개념으로 보여지는) 것을 영화는 외계인들의 문자를 통해서 시각화 하고 있다.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안개로 가득한 곳에 있고 이 공간에 먹물같은 것을 흩뿌려 문자를 표현한다. 외계인과 인간 사이에는 투명한 벽이 있어서 이 문자는 그 형태가 벽에 달라붙음으로서 인간에게 전달된다. 나는 원래 이 외계인들의 문자가 입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입체적인 형태의 문자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입체적 형태의 문자가 투명한 벽에 밀착하면서 평면적인 형태의 문자로 변형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외계인의 문자는 얼핏 단순한 동그라미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다양한 의미들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4차원 우주에 대해 아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칼 세이건(Carl Sagon)의 동영상이 있으니 참고해보길 바란다. 


다만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이 외계문자가 그 입체의 단면으로 평면에 보여지고 있다기보다는 평면으로 압축되었다는 점이다. 사과를 압축기로 바닥에 꽝 눌러서 찍 하고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은 것과 같다고 하면 좋을까? 

영화 후반부에서는 주인공 루이스 뱅크스 박사가 직접 외계인이 있는 안개로 가득한 공간으로 가서 의사소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외계문자가 이전과 동일하게 평면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은 단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인류는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 박사를 앞세워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대화를 위해서 박사가 시도한 방법은 학습을 통해서 어휘를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나중에 외계인과 박사가 1:1로 의사소통하는 장면을 보면 외계인은 애초에 인간의 말을 다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인간이 있었음에도 외계인과 인류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았는지도, 아니 애초에 그렇게 되리라는 걸 다 알고있었겠지. 모든 시간을 동시에 인지하는 친구들이니). 결국 외계인과 함께 한 영어 배우기 시간은 사실은 인류의 의도와는 다르게 외계인이 자신들의 언어를 인류에게 가르쳐주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언어가 외계인들이 인류에게 주는 무기, 혹은 기술이었다. 3천년 뒤를 대비하는 바로 그것.




2. 언어와 사고의 상호관계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감독은 영화 내에 언어의 유용성(언어가 어째서 외계인이 선물하는 무기인가)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바로 사피어-워프 가설이 그것이다. 영화에 인용되었던 사피어의 이론을 여기에 재인용해 보자면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언어가 다르면 거기에 대응하는 사고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 그 핵심 주장이 되겠다. 


워프는 이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이누이트(에스키모)의 언어에서 눈(snow)에 해당하는 단어가 '내리고 있는 눈', '쌓인 눈', '흩날리는 눈' 등 굉장히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내세우는데, 그 말은 이누이트들이 그만큼 눈에 대해서 다양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 이 언어를 공유해 온 그 사람들은 이 언어의 특성으로 인해서 눈을 다양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단편적인 예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를 살펴보자. 현대에 와서는 그 용례와 용법이 사뭇 다르지만 고전 히브리어를 해석할 때의 다양한 매커니즘 중에 하나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는 다양한 해석 이론의 한가지로, 해석의 유일한 방법도, 가장 권위있는 이론도 아님을 참고하길 바람)

히브리어의 동사는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나 영어에서와 같은 시제(tense)를 가지지 않는다. 히브리어의 해석은 시상(aspect)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히브리어 동사가 단지 완료(perfect)와 미완료(imperfect)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고전 히브리어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졌느냐(완성되었냐) 혹은 아직 진행중이냐 둘 중 하나로만 해석이 된다. 

왜 그럴까? 히브리 사람들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하나님(유일신, 창조주)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모든 생활이 이 신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처음부터 있고 마지막에도 있는, 즉 영원한 존재이다. 영원한 존재에게는 시간이란 유의미한 개념이 아니다. 모든 시간에 존재하고 모든 시간을 통틀어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에게는 오로지 되었냐, 안되었냐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 전에 완성되었든, 지금 완성되었든, 혹은 심지어 지금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완성될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이미 '완성됨'으로 표현된다. 신앙, 즉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사고방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히브리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히브리어는 이를 그대로 반영하여 시제가 아닌 시상만을 갖는 언어가 되었고, 역시 반대로 이런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인들은 그런 사고(소위 말하는 신적 사고방식. 유대인식 교육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히브리식 사고가 결국 이거 아닌가)방식의 체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출처: 영화 '컨텍트')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하자.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온전히 인류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 역시 외계인과 같은 사고방식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영화는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서 그들의 사고방식 역시 가질 수 있으며 이 언어를 통해 인지범위가 넓어지게 되어 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고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가지게 된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인류 최초로 외계인들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었던 루이스 뱅크스 박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 생애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박사도 중첩된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되었다. 박사는 동료인 이안에게 묻는다. 


"전 생애의 모든 일을 다 알게되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건가요?"




3. 지금 만나러 갑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접했던 감상평들 중에는 이 영화를 '메멘토'에 빗댄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음,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이지만 그 사람이 왜 메멘토를 떠올렸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메멘토가 영화를 시간적 순서로부터 분리함으로서 주인공이 겪는 혼란을 관객에게도 경험하도록 했었던 것처럼 영화 컨택트에도 장면 순서에 의한 트랩이 있기 때문이다. 


컨택트는 루이스 박사가 병에 걸린 어린 딸을 잃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것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사건이 그 뒤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사실은 그 반대임을 알 수 있다. 박사는 외계인과 조우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이안 박사와 결혼하였으며, 딸을 낳았으나 후에 병에 걸린 딸을 잃게되는 것이다. 이 오프닝에서 박사가 독백하듯, 사람은 시간의 순서에 집착한다. 무엇이 먼저 있었던 일이고 어떤 것이 나중에 벌어지는 일이냐. 영화를 관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이미 처음에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다. 무엇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박사가 미래에 있을 중국 장성과의 만남을 실마리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타임 패러독스 같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미래의 기억'이라는 개념으로 피해간다. 박사가 직접 말한 것처럼 외계인의 사고는 시간을 단방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그리고 그에 앞서 외계인의 문자에 순서나 방향이 없다는 언급을 통해 역시나 사고와 언어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시간을 동시에 인지하는 비선형적 사고는 미래의 일로부터 현재 혹은 과거에 영향을 주는, 우리가 보기에는 거꾸로 거스르는 듯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마치 대칭어로 되어있는 박사의 딸 한나의 이름처럼. "H-A-N-N-A-H" 


이제 박사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있을 뿐만아니라 동시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딸이 태어날 것,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 그리고 그 딸이 병에 걸려 죽게 될 것까지. 그로인해 후에 가슴을 쥐어짜며 슬퍼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박사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플 것이 분명한 슬픔이 있다고 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행복을 함께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사의 선택은 2004년의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마지막 내용의 소제목을 이렇게 달아보았다. 



(출처: 영화 '컨텍트')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미 깊은 사색에 잠겼던 한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서기 500년 경의 로마 철학자 보이티우스이다. 그의 고민은 신에 관한 것이었는데, 만약 오늘 내가 무엇을 할지 혹은 내일 무엇을 할지 심지어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까지 신이 다 알고 있다면 나에게는 아무런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쉽게 말해 운명이 모두 결정되어졌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보이티우스는 이 문제를 우리가 여태 얘기해온 특별한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풀어냈다. 신은 모든 순간을 우리가 현재를 인식하는 것처럼 동시에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시간 흐름에 존재하는 A'가 내일 밥을 먹으러 가려는 사실을 '모든 시간을 동시에 인지하는 B'가 알고있고, B의 인지 속에서는 A가 밥을 먹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때, A는 B가 그 순간을 인지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B는 A가 밥을 먹는 미래사실을 마치 현재의 일과 같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평면적인 형태로 볼 때 단지 'A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B가 보고있다'고 설명될 수 있다. A가 밥을 먹는 모습을 B가 좀 지켜봤다고 해서 B가 A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듯, 보이티우스는 신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침해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루이스 박사가 자신의 생의 모든 것을 알게된 뒤에도 결국 그대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은 결코 그녀가 그러한 운명에 굴복했다거나 자신의 의지를 포기했다고 여겨질 수 없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알고난 뒤에도 스스로 그 삶 그대로를 선택한 것이다. 루이스 박사가 딸에게 해주는 이야기에서  Non-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병은 막을 수가 없어. 네 수영실력이나 글솜씨 같은 모든 놀라운 재능들처럼..." 모든 것을 안다고 해서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따로 골라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의 삶에는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지만 이는 외면하고 버려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행복이나 기쁨과 함께 결국에는 우리 가슴에 한가득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 영화의 제목, Arrival


컨택트의 원 제목은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Arrival 이다. '도착'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가 영화 안에서 이제는 좀 더 다각적으로 인식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것은 외계인들의 지구에의 도착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고 외계인들의 사고체계에 들어선 인간의 도착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혹은 이미 모든 것이 밝혀진 자신의 삶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스스로를 맡기는, 삶에로의 도착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히려 외계인들이 떠난 바로 그 날 시작된, 한나 너의 이야기의 시작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에 빠져 그의 '영화'라는 언어를 배워보자. 이를 통해서 우리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되고 드니 빌뇌브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되어서 그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무엇이었는지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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