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아날로그 신스 그리고 첫 무그. Moog Sirin 개봉기

 

예전에 음향과 공연기획에 관한 일을 할 때는 정말 많은 신디사이저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개인 악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상 보고 만질 수 있는 장비들이었는데 그때는 어찌나 이 악기들에 무심했는지, 현악기 덕후인 나는 기타 - 바이올린 - 거문고 등의 악기들로 취미생활을 보냈고 이 전자음악의 세계에는 도무지 빠져들지 못했다. 건반악기에 친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신디사이저라는 악기의 조작법이 어렵다는 점 아닐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직관적으로 음색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스테이지 퍼포먼스용 신디사이저들은 어려울것도 없었는데.

Moog 의 analog messenger of joy. Sirin

 

신디사이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본격적으로 작곡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하루종일 미디와 씨름하고서부터이다. 기타나 피아노가 아닌 DAW를 가지고 작곡을 하게 되면, 무수히 많은 가상악기(VSTi)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다양한 악기들을 데모로 사용해 보았지만 결국 그 많은 악기들을 다 사용하게 되지는 않는다. 현재 구입을 결정해서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악기는 Sylence1Serum 이다. (Messive는 NI의 장벽으로 인해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컴퓨터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아주 유명한 저 두 신디사이저는 적당한 프리셋을 골라 곧바로 음악에 사용할 수 있는 동시에 원한다면 세부적인 설정들을 대부분 직접 컨트롤 하여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 낼수도 있게끔 설계된 악기들이다. 나는 일단 적당한 프리셋을 하나 고르고, 이 음색을 그대로 활용하거나 혹은 내 필요에 맞추어 조금만 수정한 뒤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 두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완전히 백지상태에서부터 나만의 음색을 만들어 갈 수도 있지만 너무 수고스럽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이 방법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용경험만으로도 나를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Analog Synthsizer'에 관심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품 박스. 배구공 하나 들어가있을 법한 사이즈였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실물로 가져다놓고 만져봐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작업에 적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신디사이저를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아날로그 Analog'라고 하는 이 불편한 시스템을 내 작업환경에 추가할 수 있을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어마어마한 마스터 컴프레서 Amek 9098 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으니. 

 

적당한 가격선에서 몇 가지 후보가 있었지만 역시 적당한 가격에는 적당한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고민했던 여러 모델 중 하나가 바로 Moog의 Minitaur 인데, 피치에 리미트가 걸려있어 오직 베이스로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시켰던 악기였다. 물론 Moog 악기를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 어차피 무그의 Monophonic 사운드가 갖는 이점은 거의 베이스 사운드에 있다는 점 등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악기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드는 건 안드는거다. 

 

그러던 와중 2019년 NAMM쇼에서 Moog 가 새로운 악기를 공개했다.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은 없고 내가 고민했던 Minitaur 의 피치 제한을 해제하고 색깔 조금 이쁘게 칠해서 2500대 한정판으로 만든 것이 전부였다. 물론 가격도 좀 더 비싸다. 그러나 여전히 Moog 사운드에 접근하기에 충분히 저렴한 가격이었고 유일하게 마음에 안들었던 한 가지 단점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공개와 동시에 구입을 결정했다.

 

 

왠 소고기마냥 찍혀있는 '원산지 : 미국'.  부품은 중국일텐데 ...  한정수량 2500대 중 나의 악기는 2094번째이다.

 

구매를 결정하고 곧장 수입처에 문의하여 예약주문이 시작되는 당일에 바로 결제를 해버렸다. 그러고는 한 동안 유투브에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자료만 엄청 찾아봤던 것 같다. 맞아, 과거형이다. 왜냐하면 예약주문 후 내가 제품을 수령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놈의 Moog자식들아 시간이 걸릴거같으면 아예 공개도 좀 천천히 하던가...  결제 후 딱 두 달 반이 지나서야 나는 수입처에 방문해 제품을 받아올 수 있었다. 

 

서론이 길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Sirin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도 제품을 받기까지 두 달 반이라는 상당한 시간을 참아야만 했으니, 이토록 긴 서론은 감수해 주기를. 아 물론, 개봉기라서 본론에서 다룰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박스에 담겨있던 Sirin. 역시 '새 것' 이 주는 감동은 '새롭다'

 

Moog의 Analog Synthsizer 중 저렴한 축에 속하는 제품인 Sirin은 꽤 단순하고 상당히 직관적인 구조의 악기이다. 두 개의 오실레이터, 하나의 로우패스 레더필터, 엔벨롭은 필터와 앰프에 각 하나씩, 그리고 필터와 앰프에 각각 보낼 수 있는 하나의 LFO 로 구성되어있다. 프리퀀시 노브는 VCO 2 에만 할당되어있고, VCO 1 에는 Fine Tune 노브가 있다. 각 오실레이터는 삼각파와 사각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사각파의 펄스와이드를 설정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 그 외에는 글라이드가 달려있고 CV를 지원하며 오디오 인풋이 있다는 정도가 부가기능일까. 기본구조가 단순하고 이펙터 등도 없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에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단순한만큼 악기를 이해하고 공부하고 활용하기에는 아주 적합하다는 느낌. 

 

구성품은 악기와 어댑터가 전부. USB Cable 도 하나 넣어주지...

 

Sirin이 가지는 가장 뛰어난 장점은 역시 Moog Sound 라는 것 아닐까. Moog 회사의 제품 치고 상당히 저렴한 편에 속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사운드 퀄리티가 혹시 Moog를 모델링하는 가상악기 정도 느낌이면 어쩌나 약간은 걱정도 있었는데, 그래도 소리만큼은 그대로의 Moog 소리, 모두가 아는 바로 그 Moog 소리이다.  물론 구조상 기능적으로 상위 모델이 구현할 수 없는 다양한 소리의 제약들이 있지만, 그래도 악기 자체가 발성하는 소리는 무그 신디사이저의 소리이다. Moog의 악기는 특색이 있고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만약 Moog 사운드가 필요하다면 Moog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면에서 Sirin을 통해서 제한적으로나마 '진짜 무그'의 소리를 하나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큰 기쁨이다. 

 

두번째 장점은 Sirin이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임에도 미디통신을 하고 프리셋 저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DAW 상에서 마치 VSTi를 조작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악기를 사용할 수 있다. 이리저리 노브를 돌려가며 음색을 만들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왔을 때, 예전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처럼 세팅값을 따로 사진으로 찍어둔다거나 할 필요없이 그냥 프리셋으로 저장해서 보관할 수 있다. 바로 이 장점으로 인해, 원래 아날로그 장비는 공부를 위해서 투자할 뿐 실제 작업에는 사용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었다. 조작성이 뛰어난 이 악기는 앞으로 곧장 내 작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DAW상에서 불러온 Sirin Editor. 악기의 실제 노브를 돌리면 화면상의 노브도 함께 움직인다.

 

실제 악기에서는 소형화를 위해 몇 가지 기능들이 메뉴다이빙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소프트웨어에서는 그 기능들을 전부 꺼내어놓고 볼 수 있다. 메뉴다이빙 아주 싫어하는 나에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Moog를 들고나가 라이브에 사용할 일은 결코 없을테니 아마 앞으로도 메뉴다이빙 방법은 절대 못익히지 않을까. 

 

개봉기를 작성하는 지금 시점에서 아직 악기를 받아본지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첫 느낌은 아주 만족스럽다. 첫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로서, 그리고 모노포닉 신디사이저로서, 그리고 무그로서 나의 작업환경에서 Sirin이 차지할 역할은 아주 명확하다. 역할이 확실한 만큼 워크플로우에서 제외되는 일 없이 앞으로 좋은 음악 파트너로서 함께해 주길 바라며, 개봉기의 끝은 다음으로 연결된다. 

 

. 아 이제 모노포닉 있으니까 폴리포닉 하나 사면 되겠다. 

. 이번에 가서 쳐보니까 Moog One 진짜 좋던데...   (16poly 약 일천만원)

. Moog 하나 생겼으니까 프로펫에 도전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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