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인스턴트 감성

대중문화의 인스턴트 감성




친구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요즘의 영화들은 감상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요즘은 다 뻔한 스토리다, 예고편만 봐도 결말을 알겠다’는 식의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확실히 요즘은 예고편만 보더라도 그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러고 보면 ‘이거 예고편에서 너무 많이 보여주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놓고 그렇게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흥행을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작사는 이것이 ‘어떤 영화’인지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그런 영화’를 보러간다. 






되돌아보면 그렇게 ‘감정을 유도하는’ 영화들이 많았다. 

  “자, 이건 슬픈 영화야. 울고 싶다면 이 영화를 봐. 자, 이건 웃긴 영화야. 우울한 일이 있다면 이 영화를 봐. 자, 이건 감동적인 영화야. 자, 이건 사랑에 대한 영화야…”

물론 그것 역시 영화의 한 역할일 것이다. 우울할 때 보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이런 영화들이 있어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왜 점점 줄어드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싶다.



어쩌면 각박한 현대 사회가 사람들의 감성을 점점 더 무디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평소에 무언가를 느끼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쉽고 빠르고 강렬하게’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야말로 인스턴트 감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스커뮤니케이션에서 이러한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심플하고, 그래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빠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기획은 대중문화에서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 나가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원하니 그런 콘텐츠가 더 많이 생산되는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단순하고 획일화 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콘텐츠는 그 자체도 점점 더 단순하고 획일화 되어가고 있다. ‘이런 연출, 이런 스토리, 이런 멜로디, 이런 플롯을 쓰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즐거움을 줄 수 있다’와 같은 것들. 그리고 그런 인스턴트 감성의 상품들은 다시 소비자들로 하여금 획일화된 욕구를 성장시키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취향은 ‘비경제적’이니까. 이러한 취향의 획일화가 이루어지면 제작자들은 좀 더 편리하게 흥행이 보장되는 상품을 제작할 수 있으니까. 매번 평단의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동시에 매번 흥행에 성공하는 시리즈들이 이러한 현상을 증거 하는 듯하다. 






나는 늘 대중문화의 허구성에 대해 생각한다. 문화란 그에 속한 사람들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반면, 대중문화에 있어 마땅히 그 주체가 되어야할 대중은 어쩌면 그저 소비하고 있을 뿐, 이것이 창작되어지고 생산되어지는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제작에 쉽게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좋은 문화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부적절한 콘텐츠를 거부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의문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택함으로서 우리는 주어진 기회를 사용할 수가 있다. 




  “왜 요즘의 영화들은 감상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대중문화가 좀 더 폭넓게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느끼니? 그리고 너는 어떤 얘기가 하고싶니?’라고 묻는 영화들. 감정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감을 구하는 영화들. 질문에 답하고 또 다른 질문을 갖게 만드는 영화들. 


다만, 내가 말하는 이러한 영화가 – 혹은 대중문화가 – 반드시 좋은 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느 때에는 인스턴트 감성도 우리에게 필요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감상자로서, 아니 대중문화의 진정한 주체로서 전문가의 리뷰를 보지 않고서는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문화는 그것을 내가 직접, 스스로 판단할 때 발견할 수 있다.




단연 대중문화뿐일까. 

요즘은 그 언제보다 더 나의 생각이 필요하고 표현 되어야하는 시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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